고후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고후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최고관리자 0 3134

고후 7: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아멘.

 

고린도 전서를 통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혼란에 대하여 질책하였습니다.

이후 전서와 바울의 고린도 방문을 통해서  신도들이 회개하여 교회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디도를 통하여 듣고는 그들을 격려하는 서신을 재차 띄우게 된 것이 이 후서입니다.

전신을 통하여 그들을 훈계한 것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마음에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근심하게 하여 낙심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여러가지 후회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는 정당성 사이에서 인간적인 고민을 많이 했겠지요.


그러나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 신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옛 말이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근심하는 마음이 들게 한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 근심을 쓴약으로 삼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약이 없겠습니다.

 

세상을 살아 보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에이스로 사는 사람과 비급으로 사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에이스는 항상  멘토를 정하고 귀를 크게 열고 경청하며 그 말에 집중하여  따라하려 애를 씁니다.

그러나 비 급은 자신의 허물을 모르고 그것이 최고이고 최선인 양 다른사람의 말을 경시하고 오히려 업신여깁니다..

그런 사람이 에이스로 올라서는 경우를 본적이 없습니다.

운동이든 신앙 생활이든 사회에서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고린도 신도들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훈계에 귀 기울이고  개선하려 노력하여 하나님의 근심과 바울의 걱정과 그들 스스로의 숙제를 해결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해야 하며 그 근심으로 말미암아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뜻 대로 근심하여 에이스로 살아가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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