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신앙
삶의 힘든 시기를 지날 때면 빨리 그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게 됩니다. 빨리 괴로움이 끝이 나고 평온한 날들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런 마음을 가리켜 성경은 그 기다림을 ‘파수꾼’에 비유합니다. 시 130:6에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힘든 날들은 ‘밤’이고, 기다리는 것은 ‘아침’입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당연히 오는 것처럼 우리 삶의 ‘새날’은 기다리기만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 21:12에도 ‘파수꾼’의 의미가 나옵니다.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라는 말씀 속에서 ‘아침이 오다’의 ‘오다’는 히브리어로 ‘아타’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이 말은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의 ‘돌아오다’에도 똑같은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난이 끝나는 ‘아침이 오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하면 누구나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말씀 가운데 나오는 ‘파수꾼’은 믿음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쇼메르’라는 히브리어가 쓰인 이 파수꾼은 아침을 기다리며 높은 곳에서 멀리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소망의 때가 이르기를 갈망하는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지 알게 하십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 밤을 지나게 하시고, 새로운 날들로 이끄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이끄십니다. 단순히 언제 어려운 일이 지나가려나 한탄만 하는 사람은 파수꾼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삶을 산다는 것은 사회적 위치나 직업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떤 준비를 충분하고 완벽하게 하는 적절한 때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나사렛의 목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마리아는 길거리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예수님의 무덤가를 찾은 일은 지금까지도 사순절의 때에 묵상할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어둠 속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을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쓰십니다.
어려운 시련의 시간을 지날 때, ‘파수꾼’은 빨리 그때가 지나기만을 죽은 듯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침이 오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그 일을 감당할 파수꾼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사순절의 시간을 지나면서 빛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며 바라보는 파수꾼의 신앙이 더 요구되는 때입니다. 어둠의 때에 더욱 회개하며 소망을 굳게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