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3월 1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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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기도에 대한 많은 간증을 들어왔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이야기들과, 전심을 다한 기도로 문제 해결을 받은 일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일들은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하지만, 바울은 롬 8:26에서 이런 기도의 의미와 엇갈리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기도가 아닌 성령님의 기도하심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인간의 기도의 공로를 강조하는 그 어떤 말과도 다른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에 대해 가지던 우리의 모든 염려를 사라지게 하는 은혜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말씀의 내용처럼 우리는 늘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는 우리의 연약함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기도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죄로 인해 어두운 마음, 영적인 침체 등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온전한 기도록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연약함’들입니다. 그런 때에는 정말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기도하게 되는 기도’에 대해 ‘방언 기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방언 기도를 포함하는 의미로 해석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기도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성령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온전히 기도할 수 없을 때에, 우리의 무능함이 나타날 때에 성령님께서는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할 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고전 2:11에서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기록한 대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영적으로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로 이끄실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고후 13:13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합니다. 이 축복의 기도 속에서 성령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그리고 인간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교통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심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케 하시는 은혜를 행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그 안에는 더 큰 기도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성령님의 간구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도 기도로 바꾸시는 능력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면서, 연약함 속에서도 담대히 기도로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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