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12월 2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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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에는 아브라함부터 이어진 예수님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야곱의 아들 유다의 자손을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가계를 보면, 유다는 장자가 아닌 4남이었음에도 하나님은 유다를 통해 구원의 흐름이 이어지게 하십니다. 1:3에는 유다가 다말에게서의 비정상적인 잉태를 통해 대를 이어갔음을 밝히면서까지 유다의 혈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유다의 무엇이 이런 흐름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요?

29:31~35에서 하나님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에게 연이어 아들을 낳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29:32에서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라는 말씀을 보면, 장자 르우벤을 낳은 후에 레아가 느낀 심정이 아들의 이름까지 이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처지를 돌보셨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이 주신 출산의 은혜는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깁니다. ‘이제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는 말 안에는 이제까지 겪은 설움에 대한 한탄이 엿보일 뿐입니다. 이름에 담긴 아들의 삶의 의미는 오직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한 수단에 그치는 것입니다. 당시 르우벤의 존재 가치는 그것이었습니다.

둘째인 시므온을 주셨을 때에도 레아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29:33에서 레아는 시므온을 낳은 후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이 자신의 한탄을 들으셨다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지만, 그 아들도 남편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들으심이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지만, 그 아들의 존재는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낸다기보다는, 다시 한 번 남편의 사랑을 얻는 방법으로 정해집니다. 셋째 아들 레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합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었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과의 연합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29:34)라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넷째 아들을 앟았을 때, 레아의 마음에는 극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사실은 남편의 사랑에 대한 체념에 가깝습니다. 그 체념 가운데 그녀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29:35)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도 찬송의 의미로 짓습니다. 이제 유다의 삶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며, 세상이 아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이야기는 작명(作名)’의 중요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은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후에 유다는 창 44:33에서 동생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유다는 바로 그 삶의 의미를 통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혈통을 이어가는 뿌리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스스로나 자녀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유다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삶의 목적을 통해 예수님의 계보를 이으셨듯이,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소망하는 사람을 통해 구원의 계보를 이어가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가정 가운데 충만하신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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