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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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 15:52
우리 삶에서 축복과 재앙의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그 기준을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 잠 19:23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경외’에 큰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그렇다면 ‘경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이룰 수 있을텐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추상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외’에 대해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 8:13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경외는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경외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만과 거만,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에 해당하는 나의 행실이 있는 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도 ‘패역한 입’의 죄이며, ‘내가 했다’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교만’입니다. 우리는 큰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의지하노라 말하면서도, 작은 일들은 내 힘과 의지로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큰 일도, 작은 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인정할 때에 교만에서 멀어집니다. 삼상 2:6~7의 말씀과 같이 모든 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골 3:17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바울이 권면한 내용도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재앙’도 그 안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겔 21:7에서 에스겔을 통해,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에 닥치게 될 재앙을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라는 말씀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재앙까지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재앙을 내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앙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도, 죄에서 떠나 경외의 삶으로 이끄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고후 7:10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재앙에 대해 근심할 것이 아니라, 회개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것에 대해 근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회개야말로 우리를 경외의 삶으로 이끄는 열쇠입니다. 재앙과 가까운 것이 아니라, 생명과 가까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재앙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히 5:7에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행 9:31에서는 경외함으로 부흥되는 교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악을 떠나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이 경외임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삶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경외’에 대해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 8:13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경외는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아야 경외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만과 거만,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에 해당하는 나의 행실이 있는 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도 ‘패역한 입’의 죄이며, ‘내가 했다’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교만’입니다. 우리는 큰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의지하노라 말하면서도, 작은 일들은 내 힘과 의지로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큰 일도, 작은 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인정할 때에 교만에서 멀어집니다. 삼상 2:6~7의 말씀과 같이 모든 일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골 3:17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라고 바울이 권면한 내용도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재앙’도 그 안에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겔 21:7에서 에스겔을 통해,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에 닥치게 될 재앙을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라는 말씀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재앙까지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재앙을 내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앙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도, 죄에서 떠나 경외의 삶으로 이끄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고후 7:10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재앙에 대해 근심할 것이 아니라, 회개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것에 대해 근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회개야말로 우리를 경외의 삶으로 이끄는 열쇠입니다. 재앙과 가까운 것이 아니라, 생명과 가까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재앙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히 5:7에는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행 9:31에서는 경외함으로 부흥되는 교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악을 떠나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삶이 경외임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삶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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