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9월 27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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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을 흐르는 핵심적인 가치관은 신명기적 사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입니다. 한 하나님, 택함 받은 한 백성, 하나의 예배라는 기반 속에서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치관이 되었고, 그 핵심은 행한 대로 받는다라는 인과응보적인 생각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명기적 가치관은 구약 성경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그 완전성을 잃게 됩니다. 신명기적인 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굳게 믿었던 성전이 무너지고, 유일하게 택함을 받은 자신들은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무엇보다도 의인이 고통 받는 사실에 대해서 신명기적인 약속은 흔들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후반기에는 이 무너진 신앙을 회복시키시려 하시는 하니님의 뜻이 담긴 지혜서가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지혜서가 욥기입니다. 그는 극심한 저주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본 것입니다. 문제를 이해하고자, 같을 친구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욥을 통해 새로운 언약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욥이 받은 저주의 원인을 두고 욥의 변명이 끝에 다다랐을 때,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십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38:1)라는 말씀 속에서 폭풍은 가치관이 무너지는 상황에 처한 욥과 대면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욥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대답은 그들의 무지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일 수도 있음을 알리시는 부분입니다.

대답을 들은 욥의 반응은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42:2~3)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에 매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더 크신 은혜로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욥은 폭풍 속에서의 음성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은 욥에게 하나님을 더 분명히 알게 한 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한 것이 죄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2:6)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신명기적 가치관들이 무너진 가운데 나타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21:23에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통해 저주를 복으로 바꾸시는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신명기적 사고가 깨진 곳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성도 여러분, 신명기의 약속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죄 앞에 연약하기만 한 우리를 위해 대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욥은 그토록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폭풍 속에서 이 은혜를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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