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6월 12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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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우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하게 하시고, 권능을 행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단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아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들에 전적인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보냄을 받은 곳의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상 17:1에서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라는 구절은 선지자 엘리야가 우상을 섬기는 악한 왕 앞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대언하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의 내 말이 없으면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교만하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옳은 해석입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서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자신으로부터 드러내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왕상 17:2 이후의 일들은 선지자에게 주시는 순종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결과로 엘리야는 아합 왕을 피해 도망을 갔고, 그가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낼 때 하나님은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생활을 챙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에 분명하지만, ’까마귀는 이스라엘에서도 부정적 의미의 새입니다. 11:16에서도 분명 까마귀를 부정한 조류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생명의 위협 속에 부정한 새의 도움을 받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왕상 17:9에서는 그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라고 명하십니다. 시돈은 우상 숭배가 심한 곳이었고, 엘리야를 죽이려는 이세벨 왕비의 고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곳으로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게다가 생활 능력이 없는 가난한 과부에게 음식을 달라 명령하라는 것은 도저히 세상 윤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왕상 17:21에서는 물질이 풍요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잃은 아들로 인해 슬퍼하는 과부를 위해 그 아들의 죽은 몸 위에 자기 몸을 덮은 채 기도하여 그를 되살립니다. 이방인의 생명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하여 기도하게 하신 것도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도록 선지자에게 주신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상 17장의 모든 과정을 통해 선지자가 전해야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가뭄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 인간 생활의 풍요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은,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되,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임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이 계획을 깨닫고 전하는 것이 선지자의 소명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나사렛에서 눅 4:26~27을 통해 엘리야와 시돈 과부 이야기를 하시며 이방인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다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소명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의 소명을 회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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