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3월 13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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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상황 속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의 수준에 따라 하나님이 차별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 수준이 인간의 공로이자, 신앙의 수준이라고 말해서도 안되는 것이지만, 분명 성숙한 기도의 의미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성숙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기도를 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시길 바라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눅 18:2~8에서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과부의 기도는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18:3)였습니다. 그리고 재판관, 곧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런 기도를 흔히 청원(請願) 기도라고 합니다. 가장 흔한 기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많이 비판 받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기도가 자기 소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평생 자신의 소원을 두고 기도하는 것 이외에 기도할 것이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성숙한 신앙을 보기는 어렵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기도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전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뒤이은 비유에서 진짜 청원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18:9~14에서 예수님은 비유 가운데 세리의 기도에 주목하게 하십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3)라는 구절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기도, 예수님은 이것이 진짜 청원의 기도임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청원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회개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청원의 기도를 지나, 나아가야할 기도의 모습은 중보의 기도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의미보다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기도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8:24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의 탄식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바라시는 감정을 말합니다. 고후 5:4에서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라고 전한 가운데에서도 탄식은 은혜를 더 사모하는 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령의 중보하심을 아는 사람은 기도 가운데에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다른 이를 위해서도 중보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청원과 중보의 기도를 지나면, 우리는 감사의 기도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기도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알게 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양의 기도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받으실 기도의 정점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분명 우리의 기도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존재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기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기도 가운데 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교제하시면서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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