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현대 교회는 성경 말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하게 된 시대입니다. 성경공부도 활발해졌고, 연구의 관점이나 인생의 교훈을 얻는 관점으로 말씀을 읽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전해지는 성경 말씀에 대해 ‘선포하다’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은 이렇게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놀라운 이적들은 모두 말씀을 통해 이루신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오늘날 우리는 이 ‘선포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눅 5:1에서는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분명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고, 예수님의 모습을 ‘서서’라고 표현한 것도 ‘선포’의 의미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눅 5:3의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라는 말씀에는 배 위에서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듣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거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듣는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으로 인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만큼의 거리를 두신 것입니다.
눅 5:4~11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 지를 보면 그 거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선포에 대해 시몬은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능숙한 어부임에도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어부의 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를 것만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없지마는’이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거리를 두신 이유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라는 말을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따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선포하심에 대한 온전한 반응입니다.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배가 잠길 정도로 물고기를 잡은 그 다음의 모습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에서 시몬은 말씀의 역사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렇게 엎드린 시몬에게 처음 ‘베드로’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말씀의 ‘반석’에 선 그를 가리킨 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신, 그리고 베드로가 엎드린 ‘배’는 ‘성전’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교회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고 있으며, 말씀 앞에 믿음으로 경배하는 성도들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언제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