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바울은 갈 5:16~26에서 육체를 따를 때의 삶과, 성령을 따를 때의 삶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두 길 가운데 한 편에 속한 사람일 수 있기에, 어떤 것이 육체를 따르는 삶이고, 어떤 것이 성령을 따르는 삶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성령을 따르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 분별하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 5:22~23에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는 말씀 속에 나오는 하나 하나의 열매들은 우리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때에 나타나는 삶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열매가 다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말한 이유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게 될 때,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즉,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니의 인도하심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열매들을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와 대치되는 ‘육체의 삶’에 대해서도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라고 말하며, 두 삶이 분명히 공존할 수 없는 것임을 밝혔고, 육체의 일들은 바로 죄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갈 5:19~21)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면 저절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된다는 점도 알리고 있습니다.(갈 5:16)
그렇다면, 육체의 삶을 사는 것과 성령의 삶을 사는 것은 어떤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사실 갈라디아서 5장의 내용은 롬 6:21~23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롬 6:21)라는 말씀을 통해 육체의 삶의 끝은 ‘사망’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원하는 바를 따르는 삶이 아무리 만족스러워 보일지라도, 그 결과는 사망일 뿐입니다. 그 사실 역시 성령의 열매를 금할 수 없듯이, 거스를 수 없는 결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롬 6:22에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의 끝에는 ‘영생’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성령을 따르는 삶’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삶에 대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로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육체의 삶은 실재적이고 성령의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라고 말한 것처럼, 삶의 순간마다 말씀대로 사는 실재적인 삶입니다. 늘 스스로 성령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성령의 길로 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