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베드로는 행 10:42에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하면서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라고 전했습니다. 베드로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심판하실 주님으로 만나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자의 재판장’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심판을 받게 된다는 의미일까요?
베드로는 뒤이어 행 10:43에서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라고 전합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살아 있는 자의 심판’에 대해서 말한 것은 죄 사함의 은혜와는 상충되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기를 기다리시며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전하면서, 특히 누가복음은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이 ‘죄 사함’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것입니다. 사 53:10~11에 예언으로 표현된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는 속건제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를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면서까지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자에 대한 예수님의 심판은 죽음과 저주를 선고하는 심판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심판의 의미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한 번 쌓여지기 시작한 것들이 계속 불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 12:35에서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순간마다 스스로 무엇을 쌓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이어진 마 12:36에서도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이 예수님 앞에 다 드러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모든 죄를 돌아보는 것을 죽음의 때에 맞이하는 심판 때에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앞에 때로는 심판을 받는 마음으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죄의 대가를 치를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닌, 죄 사함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쌓여가는 악을 벗어나려는 마음으로 그 심판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심판 앞에 죄를 부인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지은 마음의 죄를 자복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풍성하신 용서하심의 은혜가 다시 우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살아있는 자의 심판’은 우리를 회개로 돌아가게 하는 은혜의 심판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더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오늘의 삶 속에서도 그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봐야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도 말씀 속에서 현재의 생활을 비춰보시면서, 회개의 은혜를 회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