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실 때는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을 짓기 시작하지만, 곧 중단되고 맙니다. 학개서는 그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그 시기는 고향으로 막 돌아와 새로운 생계의 터전을 일궈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 갈등을 빚던 시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상황 속에서 무엇을 우선의 가치로 두어야할 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역시 같은 현실을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건축에 대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학 1:2)라고 말합니다. 아직 성전을 짓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바칠 만큼 자신들의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4~5)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궁핍한 상황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궁핍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 1:8에서 먼저 성전을 건축할 것을 강하게 명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삶보다 성전을 더 중히 여기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모든 상황 속에서 보호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에, 그들은 당장 삶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먼저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그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학 1:9에서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라고 하신 말씀 안에는 그들의 궁핍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사실과 함께, 자기 집을 짓기에만 급급한 백성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집을 짓겠다는 생각이 앞선 채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그들을 일깨우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창 4:17에서는 동생을 살해한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약속 받은 후에도 자신을 보호할 성을 쌓고, 자식의 이름도 ‘성’이라는 뜻의 ‘에녹’이라고 지었습니다. 자기를 보호하는 것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죄에도 불구하고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자기만의 성 안에서 하나님과 멀어진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창 5:24에 나오는 ‘에녹’은 같은 이름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성’으로 여겨 늘 하나님 안에 거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길 때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채우시는 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우리의 생활을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혼 구원의 일에 우리의 힘을 다할 때에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채우심을 믿으며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