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우리의 신앙은 분명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영적인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 지어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현실 속으로 오셔서 하나님이 현실의 모든 것들에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보이셨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사람들의 현실의 삶 속에 실재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제 삶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체험하느냐입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분명하게 경험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서 양을 칠 때부터 하나님과 ‘익숙하게’ 교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익숙함’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가 골리앗을 상대하게 된 상황이 기록된 삼상 17:39에서 잘 나타납니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라는 부분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갑옷과 칼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벗어버립니다.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선택입니다. 칼과 창을 든 거인을 대적하면서 갑옷과 칼을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익숙했던 것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현실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삼하 17:40에서 그가 택한 막대기와 돌은 익숙한 무기라기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위기를 이겨나갔던 경험입니다. 다윗은 그 ‘익숙함’의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깁니다.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세상의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은 삼하 6:14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하나님의 궤’를 맞이하면서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라는 기록대로 왕으로서의 위신 따위는 생각도 않은 채, 어린 아이처럼 춤을 추는 모습을 보입니다. 왕이라는 지위보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궤를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 18:2에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는 그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비유한 것들을 보십시오. 요새, 산성, 뿔, 심지어 바위까지 등장합니다. 과연 이것이 높으신 하나님과 어울리는 사물들일까요?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을 이와 같이 비유한 것은 실제로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대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투와 쫓기는 삶 속에서 그는 요새와 산성, 때로는 피할 바위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하나하나의 경험대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삶이 그대로 찬양이 된 것입니다.
시 51:10~11에서 다윗이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구한 것은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그에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우리와 매 순간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얼마나 익숙하게 체험하고 있는 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믿으면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