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인간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월한 피조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을 위대하다고 여기고, 그 생각의 산물들의 가치 또한 높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이 ‘생각’은 사실 인간만큼이나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듯, 인간의 생각 또한 그 영향 아래 있습니다.
시 146:4에는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흙으로 만들어져, 하나님이 생기를 호흡으로 불어넣으셔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으로 영의 호흡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면, 육신으로 살아있다고 해도 본질인 흙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육신에 매인 인간의 생각은 말씀 그대로 헛된 것이고, 소멸되어갈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의미 안에는, 우리의 생각도 그리스도 안에서 소멸되지 않을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들을 살펴보십시오. 그 생각들 그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마 6:24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적용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재물을 섬기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소멸해갈 것들에 매인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이들이 그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 복종시켜 가도록 도우십니다. 요 20:18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요 20:20~21에서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부활에 대한 생각이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요 20:27에서는 끝까지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손으로 예수님의 못 박히셨던 상처를 직접 만지게 해서라도 그의 생각이 변화되어 부활의 믿음으로 바뀌길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후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요 20:29의 말씀대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입니다. 생각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믿음의 생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 16:24에서도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생각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나의 생각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소멸할 것에 매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엡 4:23~24의 말씀대로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거룩한 새 사람으로 나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 146~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모든 생각이 하나님을 향하고, 그 놀라우신 섭리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늘 기도 가운데 생각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살피시면서 그리스도 안에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