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마 12:39에서 예수님은 표적을 더 보여주시기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기적을 행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요나의 표적’이야말로 예수님이 행하실 가장 중요한 표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 12:40~42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음과 예수님도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실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회개가 바로 놀라운 표적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이라면,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표적을 체험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용서받는 회개의 과정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인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분명 요나는 선지자로서 니느웨에 전도를 했지만, 그것은 요나 스스로의 능력과 마음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요나를 평가하기에 더 적절한 말은 ‘불순종’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여 도망을 가던 그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된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요나의 모습입니다. 욘 2:1에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스올의 뱃속’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어둠의 상황 속에 그는 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일은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는 욘 2:2에서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니느웨를 회개 시키기 위해 가야 하는 그는 자신이 먼저 절망 속에서 부르짖음으로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음 자체가 능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 2:3)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이 처한 힘든 상황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임을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집어삼킨 파도마저도 ‘주의 파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회개하게 하시기 위해 모든 상황을 만드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망의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상황을 주관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안다면, 우리의 영혼은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통마저도 하나님이 주관하셨다면, 그 고통만으로 끝내지 않으실 것임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가 바라본 성전은, 성전 중에서도 지성소 안의 속죄소였을 것입니다. 요나는 용서하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 120:1의 고백처럼 성전을 향해 가는 것, 곧 회개하는 것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것을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듯이 그 놀라운 일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이루고 계십니다. 절망 속의 부르짖음 가운데에서도 회개하게 하시는 은혜를 바라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