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호세아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호 1:1)라고 시작합니다. 남쪽의 유다나, 북쪽의 이스라엘 모두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는 왕들의 시대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를 깨닫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호 9:14)라는 호세아의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녀를 낳지 못하게 하고, 젖을 먹이지도 못하게 하라는 호소는 그들을 향한 저주에 동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기도는 저주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호 9:10~11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떠난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호 9:11)라고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호 9:13)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호세아는 차라리 이스라엘에 자녀를 주시지 않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알지 못했지만, 호세아는 하나님을 떠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나님이 떠나심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조차도 할 수 있는 것은 징벌을 약하게 주십사하고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다르게 반응한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출 32:31~32에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에 대해 진노하신 하나님께 모세가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기 희생을 통해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지도자로서의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용서의 주권이 모세의 희생이 아닌, 하나님께만 있음을 분명히 하십니다.(출 32:33) 사람의 어떤 선행과 희생도 죄에 대한 징계와 대가를 돌이키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으로는 바꿀 수 없는 죄의 영향을 돌이킬 수 있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눅 23:34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며 숨을 거두십니다. 우리에게 닥칠 죄의 대가를 대신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그 기도로 인해 비로소 우리는 심판을 피할 길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는 예수님 이름의 권세 안에서만 완전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로 인한 심판의 무서움을 모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감당하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를 잊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회복하시는 그 사랑을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