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성숙한 신앙의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기쁜 일이 생겨도, 어려운 일을 겪을 때에도 큰 변화 없는 신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가진 성품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인격이 변화된 면도 있지만, 그것이 근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신앙의 모습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예수님을, 성령님을 생각하며 기도함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만나는 여러 결핍으로 하나님께 불평하고 낙심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 그런 불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요 19:28~30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목마름’을 호소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목마름의 욕구마저도 채우지 못한 채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내가 목마르다’라는 호소마저도 외면하십니다. 그리고 목마른 예수님께 돌아온 것은 신포도주 조금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목마름 조차도 해소하지 못하신 채 숨을 거두셨지만, 하나님의 외면에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막 9:35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보이신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을 낮추시고자 애쓰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창 32:10에서 야곱은 두려원하던 에서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라고 말합니다. 에서를 ‘주’로, 자신을 ‘종’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입에 발린 아첨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이전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그를 ‘주’라 높이며 자신을 낮췄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께 순종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모습입니다.
영성이 깊어진다는 것은 깨달음과 지식이 많아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순종함으로 따라가는 것이 영성입니다. 그 가운데 교만했던 마음은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가치없는 존재인지를 깨달아가면서 변화되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행 4:23~30에는 공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사도들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핍박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도, 개인적인 소원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찬미하며,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구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나타날 때에도, 핍박을 당할 때에도 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예민하게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과 생활이 기도로 채워지는 것이 교회에 필요한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 19:28에서는 예수님의 목마름까지도 성경을 응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가르칩니다.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면 일상의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불평이 사라집니다. 늘 예수님을 바라보는 기도로 삶을 채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