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인간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의 연약한 의지에 실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를 강권적으로 주관하셔서 믿음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도우시는 분이시지만, 그 자유 의지를 거두시기 보다는 그 자발적 의지에 따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고전 8장에서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후 도축된 고기들을 먹을 수 있느냐에 대한 교회의 분란에 대해 권면하는 바울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먹는 것이 믿음에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였습니다. 이 가르침은 의지를 가지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거룩함’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불만스러웠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12)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자유할 수 있으나, 복음을 위해 절제하는 것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자유의지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바울은 고전 9:23에서도 복음에 참여하고자 절제함을 밝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가 세상의 악한 것을 따라가지 않고, 복음을 위한 일에 스스로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이 ‘자유 의지’의 문제가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음을 전하고자 고전 10장에서는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드러냈습니다. 고전 10:1에서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한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고전 10:1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과 바다 가운데 있어도, 그 어느 때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분명 현실은 광야의 시련 속에 있으나, 스스로 하나님과 함께 함을 믿는 것, 이것이 ‘거룩’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전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립다 말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홍해를 건넘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건만, 생각이 세례되지 않고 여전히 이전 생활에 욕구를 낸다면, 구원의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음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죄를 따른다면 그의 의지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구원의 여부와 관계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고전 10:5에서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에 대한 경계이며, 고린도교회를 향한 경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12:32에서 성령을 거역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구원의 일을 이루심을 안다면, 그것을 거역한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함의 증거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셨지만, 구원받은 자의 자유는 거룩을 이룹니다. 그 자유를 자기 욕망에 대한 권리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구원과 거리가 먼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직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모든 의지를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