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시편 51편의 제목에는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 시편이 다윗의 회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 시편은 우리에게 자신이 깨달은 죄를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할 것인가에 대해 깨달음을 줍니다. 다윗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죄 사하심을 간구했는지를 말입니다.
다윗이 이 기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10절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는 간구에서 그가 회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지적했을 때에, 다윗이 부하 장수인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한 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우리야를 적진 앞에 내세우도록 명령을 받은 요압 정도였을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죄가 드러나 사람들의 신망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라면, 나단을 죽이는 것으로 그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죄의 문제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자신의 체면의 문제로 여기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마음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죄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사람들에 대한 가책에 마음을 두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직접 죽음을 당한 우리야나 그의 가족은 모두 다윗의 죄로 인한 피해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 51편 안에는 그들에 대한 마음의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4절에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인간성의 문제라기보다,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는 것과 ‘회개’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이 ‘정결한 마음’을 그토록 간구했던 이유는 죄에 대한 그의 인식, 곧 ‘죄책감’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3절에서 다윗은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결코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5절에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고백에서도 자신이 근본적으로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신이 다시 죄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결과가 올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회복해주시기를 간구하였고, 그것이 그의 회개 기도의 핵심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시편 가운데 구하는 죄 용서의 방법(우슬초)이 민 19:9부터 이어진 구약의 것이라면,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히 9:13~14의 말씀대로 그 속죄의 은혜에 나타나는 차이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무엇을 위해 회개하는 지의 문제를 소홀히 합니다. 다윗의 죄책감은 하나님 안에 누리는 기쁨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늘 회개 기도를 통해 주 안에서의 기쁨을 회복해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