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십자가의 도(道)’란 한 마디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성도들의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도 똑같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는 것은 성도 모두가 십자가의 길을 갈 때에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해 이 점을 권면합니다.
고전 1:18~25에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편지의 1장에서 십자가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전해진 ‘분열’의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고전 1:11에서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라는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는 스스로 바울파라, 아볼로파라, 게바파라, 또는 그리스도파라 칭하는 무리들이 생겼습니다.(고전 1:12) 바울은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자신이 그 분열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이 세례를 많이 베풀지 않은 것이 감사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고전 1:14)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로 분파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는 나뉘어지는 일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인데, 그들이 분열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찢기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행 9:4~5에서 바울은 다메섹 길 위에서 환상 중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말을 듣습니다. 바울이 핍박한 것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들이 서로를 비난하는 일은 곧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고전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말한 것은, 교회 안에서 자신을 낮추고 묵묵히 십자가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하나되는 길임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도 모두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면(마 10:38), 서로의 주장이 달라질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17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고백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도, 상대의 주장을 이기는 말의 지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성도들의 교회에서는 우선시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면 우리는 함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존재들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 주장을 버리고 십자가를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 1:31의 말씀대로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면서 주 안에서 자랑하는 교회를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