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다는 것은 온전한 교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성경책’을 읽는다는 개념이나, 설교를 듣는다는 의미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면서 삶의 길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인하는 것이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성경은 ‘케리그마(κἠρυγμα)’라는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막 1:4에서는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에 대해 ‘케리소(κηρυσσων)’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이 말은 ‘선포하다’, ‘설교하다’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똑같이 번역되었지만, 막 1:14에서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는 ‘케리그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 관계 속에서 실제적으로 만났을 때, 그 말씀을 가리켜 쓰는 말입니다. ‘케리그마’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담겨 있고,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시는 인도하심이 내재된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너무도 쉽게 다른 것들과 바꿔버립니다. 막 7:1에서 예수님을 비난하던 사람들 중, ‘서기관’이란 직책은 하나님이 명하신 직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겪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직책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말 그대로 ‘연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십계명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그 계명들을 더욱 작게 쪼개어 세분화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계율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느덧 하나님이 계명을 통해 전하시는 말씀의 본질은 사라지고, 사람들을 얽매는 역할만이 남게 됩니다. 거기에 자신들이 지켜온 전통을 덧붙여, 어느덧 하나님의 계명은 그들의 생각과 권위를 나타내는 법으로 바뀌고 맙니다.
막 7:5에서 그들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어느덧 말씀이 아닌, 장로들의 전통을 들이대며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시며,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 7:7~8)라고 말씀하십니다. ‘외식’의 의미는 ‘가면’, ‘연기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어, 이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 계명의 본질을 왜곡한 ‘고르반’의 예를 드시며,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 7:9),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3)라고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저버린 채 자신의 생각으로 그것을 대신하는, 교만한 연기자들일 뿐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시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생각을 앞세웠던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갈 때, 말씀은 믿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세상 생각을 회개하며 다시 말씀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