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에스겔서의 35장까지는 자신들의 죄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면서 더욱 큰 절망의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렇게 좌절한 그들에게 36장부터는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이 나타납니다. 그 첫 약속이 겔 36:26~27에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라는 말씀, 곧 ‘성령’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주시면서도, 정작 그들을 언제 어떻게 해방시키실 것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는 것이 고통받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부드러운 마음’은 자신이 사라지고 하나님만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하나 자신을 비워가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생각, 계획, 고집이 사라질 때에 우리에게 보내신 새 영이신 성령께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율례를 행할 수 있습니다.
겔 36:27에 따르면,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는 것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행하게 하십니다. 바울도 갈 4:16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동일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성령의 열매들에 대해 가르치지만, 그것을 우리의 노력으로 삶에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삶의 결실들은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고자 하면, 성령께서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을 사모한다는 것은 우리가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과정입니다. 자기 힘으로 율례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약속이 큰 복음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에스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자책과 좌절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의 약속인지 모릅니다. 앞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목적에 대해 겔 36:22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행하심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며, 우리의 부족함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세워지는 일인 것입니다. 23절에서도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우리 스스로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을 간구하며 자신을 비우는 회개를 하시면서, 성령강림절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