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예수님께서는 요 16:25에서 제자들에게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늘 비유를 통해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그동안 전하시던 내용에 대해 직접 보이시겠다는 뜻을 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던 때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직전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당신이 보이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전에 전하시던 것들을 직접 나타내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로 ‘아버지에 대한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전하시는 가운데 계속 ‘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요 16“27)라고 말씀하신 의미 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리에게 이어주심과 함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직접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었던 관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관계이며,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마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뒤에도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요 16:30)라고 대답합니다. 여전히 그들은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라고 물으시면서도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믿음은 어려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닥쳐올 고난 속에서 혼자 계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모든 순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시던 모든 비유와 선포의 결론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아버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평안을 얻을 수 있고, 환난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동행을 믿으며 평안을 누리고 있는지요.
성도 여러분, 롬 8:35에서 바울도 이 세상의 어떤 외부적인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안을 잃는 것은 오직 우리 마음이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하시면서, 그 사랑을 통해 보이신 은혜, ‘아버지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은혜’를 확인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