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유대인들에게 ‘의로움’의 기준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만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으로 그 신앙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특히 창 17:11에서 아브라함이 언약의 표징으로 받은 ‘할례’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믿음을 깨뜨리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예수님께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이 전통을 무너뜨리시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이 왜곡된 믿음을 무너지게 하셨고, 바울은 갈 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각과 달리 성경은 할례로 인한 의로움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창 15:6에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는 말씀 속에서 할례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의로움을 인정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할례는 그 이후에 주어진 언약의 표징입니다. 그러나 이후로 유대인들은 율법과 할례를 믿음의 필수 조건으로 여겼고, 신약의 교회 시대에도 이 왜곡은 전해져 바울로부터 믿음으로 구원받는 구원의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은 또다시 율법과 할례에 대한 도전과 혼돈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 3:14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전합니다. 바울도 ‘아브라함의 복’을 말하지만,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창 15:6의 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밖에 있는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이방인에게도 열린 믿음의 기회, 곧 아브라함에게 ‘천하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주신 약속이 이 믿음을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바울은 갈 3:5에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통해 우리의 의로움은 완성된 것일까요? 그러나 바울이 믿음에 대해 전하고 있는 갈라디아서에는 의로움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갈 5:5에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아직 ‘의’는 소망 속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 2:19에서 율법에 대해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았다면,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삶이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의의 소망입니다. 롬 15:13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율법 밖에 있던 우리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고, 성령으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만으로 우리의 삶에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율법보다 크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