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교회 안에서도 성경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무지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지은 죄에 대해, 마음에 대해 알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우리의 무지함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욥 42:3에서 욥은 하나님께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이전까지 그는 자신이 겪은 시련에 대해 친구들과 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바를 가지고 그들은 하나님과 서로를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직접 선 욥의 고백은 ‘나는 무지한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욥의 회개에는 이 깨달음이 중요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자신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들은 것만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들으면서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고 판단할 근거로 쓰기 위해 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우리를 비추는 것이고, 그래야만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욥 42:5에서는 자신의 무지함을 고백한 후에 그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듣는 지식으로서의 교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며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히 2:1에는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라는 권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요동하며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눅 22:31에서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키 위에서 밀겨가 바람에 날리듯이 우리의 마음이 요동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임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셨습니다.
히 13:9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마음을 굳건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뿐입니다. 이 앞의 구절인 히 13:8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입니다. 오직 이 사실만이 우리가 디뎌야할 반석이며, 체험해나가야할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는 오랜 쓴 뿌리로 자리잡은 잘못된 생각들이 있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면서 더욱 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