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다윗의 시편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시편을 읽다 보면, 다윗이 어느 상황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그가 하나님께 느끼는 유대감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시 16:7에서 다윗은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칭찬을 받고, 축복을 받은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훈계가 자신에게 임할 때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훈계를 받는 것은 분명히 기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훈계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송축한 것입니다. ‘훈계’를 기뻐하는 사람은 회개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한다’라는 고백 속에서 ‘밤’은 어둠의 시간이며, 외로움, 세상의 유혹과 생각들이 확장되는 시간입니다. 다윗은 그 시간에 양심이 자신을 자극하면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밤마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괴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을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에 감격합니다.
이어지는 시 16:8의 고백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는 찬송을 이어갑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갈 때에는 앞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결정 속에 먼저 계시도록 하면 비로소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흔들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동치는 나침반을 다시 잠잠케 하시며 하나님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다시 나아가게 하십니다. 다윗의 고백의 마지막에는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라는 고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이며,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과의 교제였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던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행 2:26~32에는 베드로가 첫 설교 가운데 시 16:10~11을 인용하면서, 다윗의 고백이 사실은 예수님을 예언한 것이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시 16:10을 인용하면서 다윗은 죽어서 육신이 썩었으므로 이 고백이 자신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행 2:29), 다윗이 선지자였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인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것(행 2:30~31)임을 들어,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살리신 거룩한 이도 예수님이며, 다윗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가까이 한 이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다윗을 본받는 것을 넘어서,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순종하신 예수님을 따를 때에 부활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다윗처럼 밤에 양심의 훈계를 들으면서도 깨닫는 것이며,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 속에서 분깃이 되시며, 기업이 되시는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시면서 더울 깊은 교제로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