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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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20:08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 세상에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믿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이들은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관계가 무엇인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기를 원하시는 지를 알아가는 것이 곧 신앙이며, 신앙의 성숙인 것입니다.
민23:5~6에서는 모압 지역의 무당이던 발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도 발람을 찾으셨고, 발람도 하나님의 부름에 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도 알리셨으나, 발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지 못하고, 무당의 위치에서 신(神)으로서의 하나님을 만난 것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불렀던 발락은 그를 저주하기 좋은 명당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세 번이나 장소를 옮겨도 발람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됩니다. 자리에 따라서 기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알지 못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 24:17에서 발람은 예언 속에 이스라엘 가운데 오실 예수님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물론 그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발락도 발람도 하나님을 알되,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는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냥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과 달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창 14: 18~20에 등장하는 살렘왕 멜기세덱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창 14:18에서는 그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 14:19~20에는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기록하며,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분명 발람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난 사람일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막 5:7에서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마귀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렸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높으심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막 15:39에서는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며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유일한 고백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그 뜻대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민23:5~6에서는 모압 지역의 무당이던 발람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도 발람을 찾으셨고, 발람도 하나님의 부름에 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도 알리셨으나, 발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지 못하고, 무당의 위치에서 신(神)으로서의 하나님을 만난 것 뿐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불렀던 발락은 그를 저주하기 좋은 명당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세 번이나 장소를 옮겨도 발람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됩니다. 자리에 따라서 기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알지 못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 24:17에서 발람은 예언 속에 이스라엘 가운데 오실 예수님에 대해 말하게 됩니다. 물론 그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발락도 발람도 하나님을 알되,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는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냥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것과 달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창 14: 18~20에 등장하는 살렘왕 멜기세덱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창 14:18에서는 그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 14:19~20에는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기록하며, 그가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분명 발람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난 사람일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막 5:7에서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마귀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렸을 리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높으심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막 15:39에서는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며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유일한 고백입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그 뜻대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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