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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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4 20:15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어려운 일, 슬픈 일들을 경험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다가 그런 일들을 겪게 되면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같은 과정을 겪어가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굳건해져 가면, 그 모든 과정에는 하나님의 섭리가있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전 3:1~8에서 전도서의 기자는 그 때에 대해 깨달은 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말씀에는 정말 우리 인생이 경험하는 많은 일들 속에 서로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때가 있음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을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로 구별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때’에 대한 나열이 끝나고,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전 3:9)라는 구절이 이어지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수고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수고로 인생을 계획하고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수고 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긴다면 수고하면서도 결과가 아닌 순간 순간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기자도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주제는 11절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이 세상의 유한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영생’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은 빌 3:8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이 다 의미 없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영생에 가까이 가는 지식,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잠 23:5에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물을 비롯한 세상의 것들에 주목하면 그 끝에는 허무함만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전 3:11에서 얻는 또 다른 깨달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 즉 그 때를 다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한한 생각과 감각으로 그 섭리를 다 알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온전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 의미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허무주의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시 91:14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임을 더 깊이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말씀에는 정말 우리 인생이 경험하는 많은 일들 속에 서로 반대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때가 있음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을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로 구별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 시작됩니다. ‘때’에 대한 나열이 끝나고,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전 3:9)라는 구절이 이어지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수고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수고로 인생을 계획하고 마음먹은 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수고 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긴다면 수고하면서도 결과가 아닌 순간 순간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기자도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10)’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주제는 11절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이 세상의 유한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영생’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은 빌 3:8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이 다 의미 없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영생에 가까이 가는 지식,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잠 23:5에는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물을 비롯한 세상의 것들에 주목하면 그 끝에는 허무함만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전 3:11에서 얻는 또 다른 깨달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 즉 그 때를 다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한한 생각과 감각으로 그 섭리를 다 알 수 없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온전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이 의미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허무주의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시 91:14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원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임을 더 깊이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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