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11월 27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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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책망 중 사람을 더 유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칭찬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때로는 칭찬이 독이 되고, 책망이 약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칭찬이나 책망이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즘의 시대는 이 지혜를 심리학 등의 영역에서 구하고자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안에 쓰이는 칭찬이나 책망이어야만 온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 5:5에는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만함’으로 해석된 말의 히브리어 ‘할랄’은 ‘칭찬하다’, ‘찬양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시편의 기자가 말하는 ‘오만한 자’는 ‘칭찬 받는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칭찬이 오만함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이 부분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삼하 14:25에는 아버지 다윗을 반역한 압살롬에 대해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할랄’이 쓰입니다. 결국 외적인 능력과 용모에 대한 칭찬에 빠진 압살롬의 오만함은 패륜과 몰락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칭찬은 어떤 것일까요? 분명 인간 관계의 기술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는 칭찬은 아닐 것입니다. 잠 31:28~30에는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칭찬입니다. 외적인 부분에 매이지 않고, 오직 누군가의 경외하는 신앙만을 보고 칭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대로 ‘책망’ 역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 온전한 역사를 이룹니다. 잠 27:5에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온전한 책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딤후 2:25에는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라는 말씀으로 ‘훈계’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훈계’에 상대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담겨 있다면,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책망한다는 것은 그로 하여금 회개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도와 사랑이 바탕에 있는 훈계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능력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보다 사람의 칭찬과 책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칭찬과 책망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책망하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사람의 칭찬과 책망이 주는 오만함과 상처의 영양에서 벗어나, 가정을 살리고, 복음의 결실을 이루는 칭찬과 책망의 능력을  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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