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절기는 ‘유월절’이었습니다. 대제국 애굽으로부터 해방하게 된 날은 이스라엘 민족이 자랑스럽게 여길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바벨론의 포로 생활 후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더 귀하게 지키게 됩니다. 광야 생활 중에 지켜주신 은혜를 기리는 그 절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더 크게 와 닿았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로 인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그들의 마음에 ‘초막절’은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선조들의 마음을 되새기게 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느 8:14~18에는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5만 명,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2천명의 백성들이 일곱째 달의 절기인 초막절을 지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며,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율법을 낭독합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자신을 비우는 절기입니다. 집 대신 초막에 거하며, 자신들이 가장 연약한 때로 돌아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날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안됩니다’라는 탄원을 드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슥 11:4~7에는 이렇게 바벨론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다신 의지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슥 4:7에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잡혀 죽을 양떼’는 곧 죽게 될 운명의 힘없는 존재입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양떼를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긍휼’이었습니다.
잡혀 죽을 양떼는 사들이는 자에게도 파는 자에게도, 길러온 목자들에게도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슥 11:5)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모두는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하시고(슥 11:6),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슥 11:7)라고 말씀하십니다. ‘은총’과 ‘하나님과의 연합’,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스가랴서 전체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의 선포이자,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슥 1:11~15에는 스가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천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기록된 ‘천사’는 ‘중보자’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슥 1:12)라고 아뢰며,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대신 탄원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 안에는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신 예수님의 모습도,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보자에 의해 대언되는 하나님의 응답은 ‘불쌍히 여기심(슥 1:16)이었습니다. 완전히 낮아진 백성에게 하나님의 응답은 긍휼입니다.
성도 여러분, 의지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는 것을 헬라어로 ’kenosis’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낮아진 이에게 긍휼하심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항상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만 의지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