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할 복에 대해 다시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임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주시면서도 기뻐하실 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며 우리가 갈급하게 구하게 된, 그리고 우리가 구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복은 바로 ‘예배’임을 깨닫게 됩니다.
창 8:20에는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랜 홍수의 기간동안 방주에 갇혀 지냈던 노아와 가족들이 다시 땅을 밟으며 행한 것은, 어떤 육체적 욕구의 해소도 아닌 예배였습니다.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해소되는 순간이었고, 하나님은 이들의 번제를 기뻐 받으시며, 영원한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보이십니다.(창 9:9~17)
400년이나 애굽에서 노예 생활로 갇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복 역시 예배였습니다. 출 5:3에서 모세는 바로에게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이 가려는 광야는 환경적으로는 애굽보다 열악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런 광야로 나아가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물 없는 땅인 광야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진정한 목마름을 해결하시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 광야에서의 예배로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를 사모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예배의 주인이신 분, 바로 예수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예배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요 7:37의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는 말씀 속에서 명절은 초막절을 의미합니다. 유대 전통에서 초막절의 끝날에는 출애굽 후 광야에서 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며, 제단에 실로암에서 길은 물을 뿌리며 모든 이들이 성전 뜰을 돌면서 찬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목마름을 면하게 하신 은혜를 찬양하는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당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마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 가운데 목마름을 해결하시는 분이 자신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게다가 명절 끝날을 ‘큰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속죄와 감사로 초막절을 완성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없는 속죄와 감사는 있을 수 없기에, 예수님은 그 ‘큰 날’에 목마른 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 7:39에서는 그 목마름을 해결하심이 바로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초막절은 속죄도 감사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바로 요 8:3에서는 속죄 받았다는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라고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배를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의 행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로 삶의 목마름을 감사로 바꾸시는 은혜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예수님이 주시는 죄사함과 감사의 은혜를 위해 예배를 사모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