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욥기는 욥이 겪은 고난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 1:13~22에는 욥이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는 과정을 상세하게 전합니다. 재산뿐 아니라, 자녀들을 모두 잃은 욥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 1:20에 보이는 욥의 반응은 눈물도 분노도 아닌 ‘예배’였습니다.
욥에게 닥친 고난을 묵상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의 정도를 헤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의 첫 시작 욥 1:1~5에는 그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에 대해 사람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인이기에 그에게 닥친 고난은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욥기에서 다루는 욥의 가장 큰 시련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온몸에 종기가 나는 질병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지만, 정작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의인인 욥이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도 어려움을 겪게 하시는 일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왜 그 일을 우리에게 행하시는지에 대한 응답을 받은 사람은 그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에 대한 계획을 이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항상 그렇게 미리 모든 계획을 알게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의 시련에 대해 침묵하십니다.
욥기의 중간 부분은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과의 대화입니다. 그들은 욥을 위로하려 했지만, 하나님이 시련을 주신 이유, 곧 그의 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그런 이유가 없음을 그들과 논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아무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욥 23:10에서 친구들을 향해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라고 믿음으로 대답하지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이 고백을 하는 중에도 이어지는 하나님의 침묵이 그가 앞서 겪은 시련보다도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욥 19:26에서 죽음 이후에라도 주를 뵙겠다는 말은 죽어서라도 하나님께 이유를 묻고 싶었을 욥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욥기의 마지막에 결국 폭풍 속에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답은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2)였습니다. 아무리 의로운 자라도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우주의 창조부터 모든 세상을 주관하시는 것을 욥에게 말씀하시며, 인간이 하나님의 선한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임을 말씀하십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알아서 평안하게 따라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다 응답받고, 다 알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선하심과 사랑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기가 가르치는 참된 주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기도, 응답하지 않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척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는 것이, 어떤 응답보다도 큰 평안을 준다는 것을 체험하며 나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