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새벽예배 말씀

7월 8일 새벽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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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따지고 보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능력치를 부여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배우는 것도, 다른 누군가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이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눅 11:2에서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주기도문’의 내용을 알려주십니다. 주기도문 안에는 기도에 있어야할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신 것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기도는 응답을 받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신다는 신뢰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뒤이어 눅 11:9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받을 때까지 노력하라는 뜻보다는,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을 신뢰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그리고 눅 11:11~13에서의 말씀은 그 신뢰의 끝에 성령님이 계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완전한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신 것은 눅 18:35~43에서 맹인을 고치신 부분입니다. 눅 18:38~39에는 예수님을 향해 소리 높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맹인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 단순한 기도에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 길을 가시던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을 멈추게 한 그의 기도는 ‘불쌍히 여기소서’였습니다. 그 말은 히브리어로는 ‘헤세드’로 쓰이는 ‘자비’였습니다. 

  ‘자비’는 성경이 전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보이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 이 자비하심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맹인은 바로 그 자비하심을 구하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기도는 그 어떤 말보다도 온전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시 89:1은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로 시작됩니다. 52절까지의 모든 내용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곧 자비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말씀은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시 89:33)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 가운데 의지해야할 유일한 근거입니다. ‘은혜’란 본래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기대할 수 없는 것을 받았음에 대해 이르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한 인자하심을 거두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기도에 무지한 우리에게 바로 이 인자하심을 의지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의 때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만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완전한 기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심에 감사하며, 늘 기도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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