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7월 6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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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예물을 바친다는 것은, 언제나 이중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보이는 물질을 드림으로 행하는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 물질에 과연 바치는 자의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는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바리새인이나 부자들의 예물을 꾸짖으셨고, 부모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부양의 물질을 하나님께 바칠 예물인 고르반이라고 정하여 악용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질책을 하셨습니다. ‘예물이란 이처럼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본질적으로 예물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1:2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심을 통해 백성들의 예물을 받으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때에 사용된 예물의 히브리어 단어가 קָרְבָן (고르반)’이며, 이 단어는 이후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로 쓰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물질인 예물을 받으시는 이유는 그 물질의 필요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명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예물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예물에 대해 꾸짖으셨던 근본적 이유 역시, 그들이 그 예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이나 이익을 위해 이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예물은 고르반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25:2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예물의 히브리어는 תְּרוּמָה(테루마)’를 쓰고 있습니다. 25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바치는 예물을 통해 성막을 만들 것을 명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성소에 언약궤를 두고, 그 위에 속죄소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25:22에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셔서 만나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테루마는 바로 우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명하신 예물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내가 있음을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예물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물이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그 예물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아무런 의미도, 역사도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물 안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세상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습니까. 이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안에는 그 물질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감사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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