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12월 11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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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역사하시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기적이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지금도 기적이 필요한 곳에서 그 표적을 보이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바라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막 9:14~18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 사이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온 아버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귀신을 쫓는 일을 하지 못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막 6:7에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라는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이미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막 6:30에서는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라는 내용 속에서 자신들이 행한 기적의 역사를 보고합니다. 그런데도 귀신들린 아이에 대해 다시 그 일들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사실 막 6:52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들도 기적을 행했고, 6장의 앞 부분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보았던 제자들이었지만, 한밤중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공포에 떨게 됩니다. 막 6:52에서는 이에 대해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둔하여졌다’는 말은 ‘완악해졌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도, 자신들이 행했던 기적도, 그 목적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제자들은 그 모든 것의 초점을 자신의 영광과 유익에 맞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기적을 보아도,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전 10:24의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과 다른 마음을 품었기에, 제자들에게는 기적을 대하는 온전한 소망과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둔해졌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막 9:24에 나타난 아버지의 소망은 간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라는 말에는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겸손함과,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는 믿음이 없다고 고백했지만, 그 간절한 기도를 예수님은 믿음으로 보십니다. 그래서 이 일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믿는 자들의 간구를 통해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필요한 것은 기적에 대한 간절한 간구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던 목적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기적을 간구하는 것이 잘못된 신앙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은 여전히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타날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좌절하던 마음을 회복하며, 놀라운 기적을 바라고 간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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