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5일 금요심야예배 말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 동산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들이 잃은 것은 단지 풍족한 삶의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인간의 존재를 가장 존엄하게 하는 요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창 1:27~28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육과 번성, 다스림의 축복보다 앞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가지게 하셨다는 것만큼 놀라운 축복은 피조물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죄오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그 형상을 잃게 됩니다. 정확히는 스스로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 5:3에는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손을 낳으면서 이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자신의 형상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인간의 본성을 대물림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교제하던 모습을 잃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죄로 인해 잃게 되었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눅 3:3~38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 이후에 갑자기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 1장에도 기록하고 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족보를 기록했다면, 누가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족보가 아브라함을 넘어, 아담, 그 위에 하나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눅 3:38에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족보를 하나님과 이어지게 하면서 다시 인간과의 관계를 이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족보는 우리에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그 회복을 지금 우리에게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요 3:8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으로 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요 14:27~28에서 예수님은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 14:26~27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함께 하심의 증거로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오늘 그것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회복하고 싶으셨던 그 관계, 그 형상을 누리고 지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